별 하나 고개를 보이지 않는 어둠컴컴한 새벽 12시. 의지할 것이라곤 핸드폰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뿐인 스산한 골목을 곁눈질로 흘긋 쳐다봤다. 아무도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곤 하늘보다도 더 깊은 그 어둠으로 고개를 내밀어 발걸음을 딛었다. 몸을 돌려 골목과 거리의 경계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인공조명의 불빛이 시야 속으로 하나하나 새어박혔다. 내가 원하는 빛은 없었다. 늦은 새벽의 거리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인파 사이를 눈으로 좇으며 그 자리에 낑겨있을 바보를 찾아다녔다. 겨울이 일찍 찾아오려나. 가을의 밤공기는 제법 쌀쌀해서 겨우 가디건을 걸친 상태로는 이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는 듯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양 팔을 감싸안았다. 시선을 발치로 떨구었다. 언제 오는거야, 감히 나를 기다리게 만들어? 아직도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 에이스가 언듯 얄미워졌다. 오면 머리부터 쥐어박아야지. 나는 여태 기다렸는데 왜 너는 이제야 찾아오느냐며, 녀석이 오자마자 쏘아붙일 말을 머리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뭘 말해야 하더라......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얇게 걸친 옷 위로 뜨거운 체온이 겹쳐졌다. 겨우 긴 팔 티셔츠 하나만을 걸친 에이스의 두꺼운 팔이 허리를 감싸고 몸을 뒤로 제꼈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중심을 못잡은 채 헛걸음질을 치자 건장한 성인 남성의 두 발이 꼬일 듯 안 꼬일 듯 좁은 골목길에서 짧은 탭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늦었잖아! 서너마디 쏘아붙이려 생각해뒀던 문장들이 방금의 행위로 한순간 머릿속에서 전부 지워졌다. 고개를 돌려 등 뒤의 얼굴을 쳐다봤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입꼬리를 크게 찢으며 웃고있는 에이스의 표정에 짜증도 확 가라앉았다. 헤헤, 미안. 근처에 맛있는 빵가게가 아직 문을 열고 있길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저를 꽉 껴안은 팔 언저리에서 들렸다.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뭔가 구실 잡으려 들린 건 아니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가만 바라봤더니 어쭈, 에이스가 저의 시선을 저 쪽의 모로 돌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이자식이! 뭐라고 쏘아붙여야 하지. 이미 다 까먹은 문장을 다시금 새기려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제 몸을 달구는 녀석의 따듯한 숨과 체온이 방해되었다. 얘는 전생에 불구덩이라도 됐던 걸까, 이런 날씨에 따뜻하긴 더럽게 따뜻하네. 비수를 꽂는 단어 대신 에이스의 꽉 껴안은 팔 위로 손을 겹쳤다. 자, 빨리 가자. 루피가 기다리고 있겠다. 어짜피 걔는 속 모르고 편하게 자고 있겠지만. 골목길을 나가는 그 잠시동안 서로의 체온을 길게 공유했다. 그의 열기가 혈관을 타고 온 몸에 전해졌다. 찬 바람에 어쩔 줄 몰라하던 몸이 단 한 사람의 체온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몸의 긴장이 풀려나는 듯 옅고 긴 숨을 내뱉자 에이스가 둘렀던 팔을 풀더니 제게 손을 하나 척 내밀었다. 에스코트 해드립죠, 도련님. 녀석의 농담에 피식 웃으며 그 열덩어리를 슬며시 쥐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의 눈에는 새카맣게 빛나는 별과 우주가 담겨져 있었다. 조금 더 치켜세워 빛 하나 새어나오지 않는 높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별 하나가 시선에 꽂혔다.


'ONE PIECE > 텍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이사보] 조각글 3  (0) 2018.10.16
[조로산] 조각글 1  (0) 2018.10.16
[에이사보] 조각글 1  (0) 2018.10.10
[조로산] 욕정  (0) 2018.10.03
[에이사보] 살내, 그리움  (0) 2018.10.02

+ Recent posts